서울 가양동에서 무역 업체를 운영하는 최 모 씨는 요즘 여윳돈을 투자할 곳이 없어 고민이다. 강남 재건축단지에 투자하자니 주택 경기가 침체됐고 사업 기간이 길어 얼마나 투자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은행에 넣어두자니 금리가 너무 낮고 부실 문제가 불거진 회사채 투자는 엄두가 안 난다. 친한 시중은행 PB 조언을 들은 그는 결국 청담동 소형 빌딩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최 씨는 “얼마나 시세차익을 낼지 믿음은 안 가지만 투자 대비 5% 정도 월세는 받을 수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다. 최근 빌딩 거래가 늘고 있다는 소식도 투자를 결정하게 된 계기”라고 털어놓았다.
부동산 투자의 씨가 말랐다는 요즘, 돈 많고 잘나가는 이들이 돈을 묻어둔 곳은 어디일까. 대한민국 부자들이 모인다는 강남, 그중에서 강남 빌딩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주택 경기가 좀처럼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빌딩, 그중에서도 강남권 중소형 빌딩 인기는 꾸준하다. 50억~200억원 사이의, 웬만큼 좋은 입지를 갖춘 중소형 빌딩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 강남에서 빌딩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김 모 공인중개사는 “강남 중소형 빌딩 시장은 다른 부동산 상품에 비해 잠재 매수세가 탄탄한데 특히 중소 업체의 사옥 구입이나 자산가들이 투자 목적으로 빌딩을 매입하는 사례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주택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사이클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알코리아에셋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서울에서 진행된 300억원 이하 중소형 빌딩의 거래건수는 총 174건으로 전 분기(97건)보다 8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금액도 같은 기간 5774억원에서 8948억원으로 3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경매 시장은 더욱 뜨겁다. 지난 9월 한 중소기업이 낙찰받은 지상 10층, 연면적 2647㎡ 규모 강남구 논현동 빌딩에는 무려 12명이 응찰했다. 경쟁이 셌던 탓에 낙찰가는 감정가(75억원)보다 12억원 많은 87억원이나 됐다.
중소형 빌딩 시장 활황은 강남권이 주도한다. 빌딩 전문 업체 프라퍼트리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 말까지 1년 동안 서울 주요 오피스 밀집 지역에서 거래된 중소형 빌딩(연면적 6600㎡ 이하)은 모두 141건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강남권이 112건으로 가장 많았고 도심(18건), 여의도(11건)가 그 뒤를 잇는다. 강남권(강남, 서초, 송파구)에서는 강남구의 거래건수가 77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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